거리에는 여전히 불빛이 남아 있다

거리에는 여전히 불빛이 남아 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누군가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걷는다

도시의 소음은 어느 순간부터 배경 음악처럼 들린다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이 모든 게 섞여서 익숙한 밤의 풍경을 만든다  
나는 창가에 앉아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지만  
이런 순간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루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스쳐 지나간 말들  
내 머릿속에 떠다니다가 하나둘씩 정리된다  
어떤 말은 조금 오래 머물고  
어떤 기억은 쉽게 흘러간다  
마치 머릿속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하루의 조각들이 엉켜 있다가  
밤이 되면 하나씩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창문을 열면 찬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기분 좋은 쌀쌀함과 함께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이 밤을 가득 채운다

책상 위에 쌓아둔 책,  
다 마시지 못한 커피 한 잔,  
휴대폰 알림이 몇 개 쌓여 있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지만  
내 작은 공간만큼은 천천히 머물러도 괜찮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특별한 날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평범한 날들 속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별일 없는 하루의 끝  
그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이 정돈된다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이다  
똑같이 아침이 오고  
똑같은 사람들과 스치고  
크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없이  
하루가 저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만든다  
크게 웃었던 날도  
혼자 울컥했던 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 오늘도  
모두 다 내 하루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별다른 일 없는 하루의 끝에서  
잠시 멈춰서  
고요하게 숨을 내쉰다